김해죽도왜성 부산 강서구 죽림동 국가유산
늦가을의 공기가 한층 차가워진 오전, 부산 강서구 죽림동의 김해죽도왜성을 찾았습니다. 낙동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은 지점, 작은 구릉 위에 자리한 이곳은 지금은 고요하지만, 한때 왜군이 쌓았던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입구에서부터 솔잎이 바닥을 덮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솔향이 퍼졌습니다. 나무 사이로 드러난 돌담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며, 세월의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김해죽도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점령한 후 축조한 대표적인 일본식 성으로, 현재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터 위에서 내려다보는 낙동강 물결이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고, 바람 속에는 오래된 전장의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1. 성곽으로 오르는 길
죽도왜성은 죽림동 해안도로 근처에서 작은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닿을 수 있습니다. 초입에는 ‘국가유산 김해죽도왜성’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좁은 흙길 옆으로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길은 완만하지만 돌계단이 드문드문 이어져 있었고, 중간 지점부터는 성터의 외벽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돌들은 일정하지 않은 크기로 맞물리듯 쌓여 있었으며, 그 위로 잡풀이 자라나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강물 냄새와 흙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쳤습니다. 오르는 내내 성이 높다기보다 ‘길게 뻗은 방어선’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정상에 다다르자 시야가 열리며 낙동강과 을숙도 방면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쟁의 자리였던 곳이 지금은 조용한 전망대로 변해 있었습니다.
2. 구조와 성벽의 형태
김해죽도왜성은 구릉형 지형을 따라 축조된 평산성 형태의 일본식 성입니다. 성벽은 불규칙한 현무암과 화강암을 섞어 쌓은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구간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성내에는 평탄한 터가 여러 곳 존재해, 당시 병영과 창고, 망루 등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성벽은 평균 높이 4~5미터, 두께 약 3미터 정도로,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 낮아지는 경사형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돌의 쌓임새였습니다. 일본식 축성법인 ‘노즈라즈미’ 기법이 사용되어, 큰 돌 사이사이를 작은 돌로 메워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한 형태였습니다. 손끝으로 만져보면 돌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오랜 풍화의 흔적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단단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상징성
김해죽도왜성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부산진성을 점령한 뒤, 낙동강 하구 일대를 장악하기 위해 세운 일본식 성곽입니다. 전략적으로 낙동강 수로를 감시하며 내륙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한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성을 중심으로 일본군은 부산, 진해, 김해 일대를 연결하는 방어망을 구축했으며,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성은 폐허가 되었지만, 석축 일부와 지형의 윤곽이 남아 그 시대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돌 하나, 흙 한 줌에도 전쟁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눈앞의 평화로운 강 풍경을 바라보며, 한때 이곳이 싸움의 최전선이었음을 상상하니 묘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현장 관리
죽도왜성은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주요 성벽은 안정화 작업을 거쳐 붕괴 위험 없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탐방로에는 나무 데크와 안전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곳곳에 유적 해설판이 있어 일본식 성곽 구조와 축성 기법, 임진왜란 당시의 전황이 도식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잔디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탐방 중 만난 안내 직원은 “봄마다 성벽 이끼를 제거해 돌의 원형을 유지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성터 위에 서면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그 바람마저 이곳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인공의 복원보다 자연의 흔적이 남은 유산이라는 점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곳
죽도왜성을 둘러본 뒤에는 낙동강하굿둑 전망대와 을숙도생태공원을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성터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로, 낙동강의 수문과 철새 도래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근 죽림마을에는 오래된 어촌의 풍경이 남아 있어 짧은 산책 코스로 알맞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강변을 따라 있는 장어구이 전문점이나 어묵국밥집을 찾는 방문객도 많습니다. 역사 탐방 후 낙동강의 자연을 함께 느끼기에 좋은 동선이었습니다. 봄철에는 억새가 피어나 성터와 강변이 함께 빛나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돌담 위로 떨어져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여운이 남는 길이었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사항
김해죽도왜성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며, 상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입구 주차장이 협소하므로 주말에는 인근 도로변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등산화나 운동화를 착용하면 돌계단 구간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강가 특성상 습기가 높고 벌레가 많으므로 긴팔 복장이 권장됩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돌이 젖어 미끄러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해 질 무렵에는 낙동강 방향으로 노을이 비추며 성벽이 붉게 물드는 장면이 인상적이니, 사진 촬영을 원한다면 오후 늦은 시간대를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유적 위에 오르거나 돌을 옮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걸으며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기 좋은 곳입니다.
마무리
김해죽도왜성은 부산이 지닌 역사 속 상처와 복원의 이야기가 동시에 담긴 유산이었습니다. 돌 하나하나가 긴 세월을 견디며 그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그 속에 남은 시간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지금은 풀잎이 자라나고 새가 날아드는 평화로운 언덕이지만, 그 아래에는 수백 년 전의 긴장과 결의가 여전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서 있자니, 과거와 현재가 한 시선 안에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성벽을 돌아보니, 석양이 돌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모든 흔적을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봄 햇살이 따뜻한 날 다시 찾아, 돌 위로 피어날 풀잎 사이에서 또 다른 시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김해죽도왜성은 부산의 강과 역사가 만나는 조용한 기록이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